2002/02/02
존경하는 판사님 우리 아빠를 풀어주세요.
…린나이비정규직 노조 김종학 수석부위원장 결국 구속
1월 31일 서대문 경찰서 유치장 면회실 구멍 숭숭 뚫린 플라스틱 유리 보드 건너편에 서있는 아내와 딸의 얼굴을 바라보는 김종학 린나이비정규직노조 수석부위원장은 무엇하러 왔냐고 물으면서도 얼굴엔 기쁨의 홍조가 가득하다.
재정사업을 위해 시내로 나올 때까지만 해도, 김종학 동지는 아내에게 경찰서에 잡혀왔다고 말하는 것은 상상조차 하지 않았을 터이다. 용감한 외출(?)을 경찰서 유치장에서 후회하고 또 후회했을 터이고, 가족들 생각에 가슴 미어졌을 터이다.
김종학 동지에게는 아내와 세명의 자녀들이 있다. 아내는 씩씩한 얼굴로 "강성모 회장은 쌀밥 안먹고 금밥지어서 평생 먹는다더냐"며 "파업은 합법이라며 파업했다고 잡아가는 법은 또 무어냐"며 남편의 기운을 북돋아준다.
3월이면 고등학생이 되는 큰 딸 은주는 "설에 친척집을 많이 다녀서 세배돈을 벌어와서 엄마에게 준다"며 친척들 이름을 곱씹고 "가난하고, 힘없는 사람 잡아가는 경찰관은 절대 되지 않겠다"고 다짐한다. 가슴속에 피눈물이 흐르고 있을 텐데 남편이, 아빠가 속상해할까봐 김종학 동지 가족들은 씩씩하게 면회를 마치고, 서대문 경찰서를 나선다.
1월 26일 연행된 김종학 동지는 결국 구속되었다. 이제 며칠 뒤면 구치소로 옮겨진다. 그는 비록 구치소에 갇히지만 그의 아내와 딸은 그가 매우 자랑스럽고 훌륭한 사람이란 걸 알고 있다. 우리는 하루 빨리 린나이비정규직 노동자의 투쟁을 승리로 만들어야 한다. 그리고 하루빨리 김종학 동지를 가족의 품으로 돌려보내야 한다.
오늘도 중앙노동위원회 앞에서, 동교동 린나이 사옥 앞에서 1인 시위를 하고 있는 린나이 동지들의 가슴에 따뜻한 햇살을 안겨주어야 한다.
아래 글은 김종학 린나이수석부위원장의 큰 딸이 작성한 탄원서 전문입니다.
존경하는 판사님께
판사님, 안녕하십니까?
저희 아버지 문제로 이렇게 탄원서를 올리게 되었습니다.
저희 아버지는 다른 아버지들이 8∼9시에 퇴근할 때 11∼12시 밤늦게까지 일을 하시고 돌아오셨습니다. 다른 친구들은 일요일엔 아빠와 시간을 보냈지만 저희 아버지는 일요일에도 일을 하실 때가 많았습니다.
그렇게 우리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몸을 바치며 성실히 일을 하신 집안의 충실한 가장이고 저의 훌륭하신 아버지가 무슨 이유로 들어가게 되셨는 지 모르겠지만 우리에겐 아버지가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도 어렵지만 엄마도 마음고생이 심하신 데 그런 엄마의 모습을 볼 때마다 마음이 아픕니다.
마음이 아픈 것까진 참을 수 있지만 생활비가 없어 간신히 끼니를 이어가고 저도 이제 곧 고등학교를 들어가야 하는데 학비도 만만치 않아 걱정입니다.
다른 아이들은 고등학교를 간다고 좋아하며 교복을 맞췄다고 자랑도 하는데 전 교복은커녕 학비도 마련 못하는 집안 사정을 알기 때문에 더 죄스럽고 힘듭니다.
아무것도 모르는 다섯살박이 동생은 아버지가 보고 싶은지 엄마에게 아빠 세밤만 자고 오냐고 물어보고 너무 오랫동안 못 볼 때는 가끔 아빠가 보고 싶다며 울음을 터뜨립니다.
그나마 아버지가 열심히 일하고 있다는 생각에 우리 가족은 기댈 수 있었고, 아버지께서는 무슨 일이든지 하셔서 우리 가족을 굶게 하시진 않았는데 이런 상황에 아버지까지 집에 안 계시니 매일 한숨으로 보내는 엄마를 보며 저와 동생은 괜히 엄마에게 미안해집니다.
엄마는 아버지가 잡혀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저희에게 눈물까지 보이셨습니다.
존경하는 판사님, 저희에겐 아버지가 절실하게 필요합니다.
경제적으로도 힘들지만 마음 고생하는 엄마에게 기댈 수 있는 곳이 필요합니다.
판사님 제발 저희 아버지를 풀어주세요.
2001년 1월 31일
큰딸 김은주
전/국/민/간/서/비/스/산/업/노/동/조/합/연/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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